확인해볼까요

​ 2020.1.11​ 토요일, 결혼식이 두건이 있었다.오후 3시에 연대 동문 회관에서 대학 동창의 자녀 결혼식에 참석하고 대학 친구 중 나오고 조금 취향이 같은 친구와 함께 영화 파바로티를 보자며 서대문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니, 이런…. 광화문 시위 때문에 버스가 서대문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 서둘러서 택시를 타고 다른 길로 되돌아가면, 강북 삼성 병원 앞에서 차가 막혀서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시네 큐브 극장에 가고 1분 전의 입장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CDP도 없는 시절 해외에서 근무하면서 CD를 사서 귀국하는 사람들에게 몇 개씩 사 보냈다. 그렇게 모은 CD 중에서 개인 성악가의 CD로는 아마 파바로티 음악이 가장 많을 것이다.파바로티는 성악을 무척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서 음악의 우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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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일대기 이 영화 뷰티풀 마인드, 연예인들의 전쟁 중 1작품, 그리고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비롯한 모든 시리즈를 영화화한 명감독인 론 하워드가 제작했다며 더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한 다큐멘터리가 아닐 것이라고 한다. 파바로티에 대한 일대기를 쓴 책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서점에서라도 책이 있었다면 샀을텐데.. 그의 이야기는 주로 편린으로 주워 읽었을 뿐이란다.그가 빵팔이의 아들이었다는 것도 알고, 그가 젊은 여자와 재혼해 암으로 죽은 사실도 안다고 한다.그의 음악 이외에 내가 아는 것은 고작 그 정도였지만, 오늘의 영화를 통해서 내가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고 한다.영화는 이웃에서 그와 함께 살던 가족과 매니저와 연인과 함께 출연한 감독들, 그리고 동료 성악가들이 그를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라고 한다. 다행히 그에 관한 기록은 데뷔 때부터 남아 있었고 그의 사생활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낭독자로 나와 자세히 알 수 있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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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만들 수 없어요. 천재는 처음부터 존재합니다. 학교 음악선생에 불과했던 그가 젊은 시절 성악을 공부하며 콩쿠르에서 한 번 우승한 뒤 사람들은 그로부터 천재의 능력을 발견했습니다. 남들처럼 여러 차례 콩쿠르에 떨어졌고,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결론이 아닙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High C음을 자연스럽게 낼 수 있는 성악가라는 언급에서 시작했습니다. 전설적인 테너 엔리코 칼루조 이후의 최고 성악가 파바로티의 노래 중 그를 기리는 노래 “Caruso”로 그의 High C미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노래가 오래 전부터 저의 S11의 컬러링 음악이 마을입니다.그의 등장에 음악계는 떠들썩했습니다. 순식간에 오페라에 캐스팅돼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 존 서덜랜드로 인정받았습니다. 또, 대타로 출연한 라보엠에서 그의 진가는 확실히 인정받았습니다. 파바로티의 모든 일상은 그의 첫 번째 부인과 그의 매니저였던 소프라노가 그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나레이션했고, 그와의 결별 이후 언론이 모든 정보를 담아냈기 때문에 이렇게 자세한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영화의 극적인 장면은 백혈병의 병마를 이긴 호세 카레 라스를 돕기 위하여 만들어진 쓰리 테너의 공연이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기념하고자 로마의 유적지 카라카라 해수욕장에서 인도의 유태인 지휘자 주빈 메타의 지휘로 감동적인 공연 소식과 그 감동을 재현하고자 뜻을 모아 열린 전 세계 유명 도시에서 열린 쓰리 테너 공연과 그 열광적인 팬의 응원. 그리고 폭우가 내리는 런던, 만나서 반갑습니다~도파크에서의 공연과 다이애나비와의 인연으로 펼쳐지는 자선콘서트 활동, 그리고 파바로티와 그의 친구들이라는 제목으로 전쟁난민을 돕기 위한 로큰롤 가수들과의 공연 등 가슴 뜨거운 사연이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화면에서 보고 직접 그의 생전의 모습을 보니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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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월드 투어 이야기에는 중국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국 공연 이야기는 영상에서 빠졌대요. 그 이야기는 내가 증언한단다. ​ 내가 기억하지 않은 1977년 그의 내한 공연 후 1993년에 잠실 역도 경기장인 그의 두번째 내한 공연에 아내와 함께 참가하고 있었다고 한다. 공연 전 사진 촬영은 하지 말라는 사회자의 조언과 주의에도 불구하고 관중은 그의 노래 도중 떠들고 프레쉬하며 사진을 찍었더니 파바로티가 공연을 하지 않는다며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고 한다.​ 또 2000년 6월 잠실 운동장에서 벌어진 한반도 평화 음악회에 그가 다시 내한 공연을 열었다고 합니다. 당시 서울시향 전명훈의 지휘 아래 내가 부르던 서울부부합창단에서 파바로티와 함께 그리운 금강산을 합창으로 함께 부르기로 해 신경을 쓰며 연습했는데 공연 전날 북한에서 이 노래를 싫어할지도 모르는 엉뚱한 발상에 그리운 금강산은 나의 살던 고향은으로 변한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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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에 그는 특별히 젊은 여자를 만나 데이트를 즐기던 것을 들켜서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의 결혼에 본처인 세명의 딸은 낳아 준 아도우아베로ー나와 이혼하고 2003년 그의 비서였던 35세 연하의 만토바니와 결혼 후 딸을 하나 낳았지만, 그 후 췌장암이 발병한지 2007년 그는 하늘의 별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가 여자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3명의 아이들도 모두 섭취할 이 여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오페라의 배역을 하다 보니 상대역이 모두 여자니까 자연과 여자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부인의 이야기도 있고 다른 여자와 사귈 때는 알면서도 그냥 넘어갔지만 35세 연하의 여성과 사귈 때는 용서할 수 없고 이혼했습니다. 비록 그의 스캔들은 유산까지도 문제가 되어 재판까지 되었다고 들었지만 결말은 알 수 없습니다.영화를 알리는 전단지 뒷면에 이런 글이 써 있어요. 그의 인생은 한편의 오페라였어요.대부분의 오페라가 그런 불륜 스토리가 많듯이 아마 그의 삶도 오페라의 주인공이었을 거예요. 어떤 유명한 작곡가가 라 보엠처럼 르 파바로티라는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을까?영화는 그의 삶의 고비마다 잘 어울리는 상황의 오페라의 한 구절을 노래하는 장면이 결합되어 더욱 의미 있게 파바로티를 이해하게 됩니다.그는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영원히 계속될 겁니다.파바로티 이전의 성악가들의 노래는 잡음이 혼재된 소리로 남아 있지만 디지털 시대를 거친 그의 노래는 언제나 티셔츠 없이 깨끗하게 들을 수 있어 좋습니다.그는 정말 이 시대의 찬란한 마에스트로예요. 그와 같은 시대에 살았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