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이대형 Vol. 1 BTS와 예술계를 잇는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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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이대형큐레이팅 컴퍼니 에이치존 대표. 2000년 홍익대학교 예술학부를 졸업하고 2010년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큐레이터학 석사를 받았다. <블루닷 아시아>전(2008년), <코리안아이>전(2009년) 등을 기획한 그는 2013년 현대자동차에 합류해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7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총감독을 맡기도 한 그는 최근 BTS와 영국, 독일, 아르헨티나, 미국 한국 등 전 세계 아티스트를 엮는 글로벌 현대미술 전시 프로젝트 <CONNECT, BTS>전을 총괄 기획하며 화제를 낳았다.

 

지난 1월 28일 열린 <CONNECT, BTS> 서울 전시는 아티스트 BTS의 위력을 실감하기에 충분한 자리였다. 이와 동시에 예술의 잠재력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는데, 전시장 앞에 길게 늘어선 관람 행렬은 이를 방증하는듯 했다. 대중예술과 순수예술, 아이돌 뮤지션과 현대미술 작가…. 이 생소하고도 흥미로운 조합을 생각해낸 것은 이번 프로젝트의 총괄 기획을 맡은 이대형 아트디렉터다. ‘다양성에 대한 긍정’과 ‘주변부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소망’ 등 BTS가 추구해 온 가치 속에서 시대정신을 읽어낸 그를 만나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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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됐나? ‘어떻게 하면 예술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모든 큐레이터의 화두다. 예술은 철학과 사상, 역사를 간직한 보물섬이다. 그러나 그 섬이 고립되어 있다면? 아무도 진가를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다양성의 가치를 추구하는 BTS는 예술의 가치를 확장할 수 있는 막강한 컨텍스트다. 그래서 현대 미술을 공공 영역으로 끌어올릴 힘이 있다. 예술은 특정 소수의 전유물이 아닌, 많은 사람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조금 의외다. 당연히 BTS로부터 출발한 기획일 것으로 생각했다(웃음).어느 한쪽의 의지가 아닌 참여 작가, BTS, 빅히트, 큐레이터 등 모두의 공감이 모여 가능한 기획이었다. 지난여름, 기획사 관계자들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예술과 사회, 예술과 인간, 예술과 미래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를 나눴는데 미술계와 공감대를 이루는 부분이 많았다. 예술이 가진 좋은 면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길 원했다. 이런 고민은 비단 나만 하는 게 아니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가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인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ies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더라. 지난 50년간 정통 현대미술을 지켜온 그들은 이제 ‘예술의 정의를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과 테크놀로지에 관심이 높은데, 서펜타인 갤러리가 CTOChief Technology Officer를 영입한 최초의 현대미술관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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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 조금 더 자세히 나누자. 그에 앞서 ‘연결connect’이라는 키워드에 관해 설명해달라.전시를 기획할 때 사회 현상과 시대를 관찰하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 디지털 혁명이 촉발되면서 사람들은 기술이 정보를 균등하게 나눠주고 이로 인해 평등한 세상이 열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는 점점 더 배타적으로 변했다. 나와 우리, 자국만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배타성은 일종의 생존전략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BTS가 던지는 메시지는 고무적이다. 다양성에 대한 긍정, 소통, 변두리에 대한 소망…. 이런 태도가 연결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흥미롭긴 하지만, 조금 나이브한 철학 아닌가?실제로 그렇게 묻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 나이브한 생각이 이 사회에 제대로 실현된 적이 있나? 그저 구호로만 맴돌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언제나 힘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해왔다. 노예 제도와 서구 열강의 침략, 여성과 성 소수자를 향한 배척을 생각해보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갈등이 생겨났다. 그런데 BTS의 팬덤, 즉 아미ARMY는 다르다. 이들은 국경과 세대, 젠더와 직업을 초월한다. 아미라는 이름 아래 모두가 수평적rhizomatic이며 외부를 향한 포용력도 놀랍도록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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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이라는 주제를 대변하듯 수많은 큐레이터, 아티스트와 협업했다.이번 전시는 5개 도시, 22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다.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서울 전시의 아트 디렉팅은 내가 맡았지만, 런던은 벤 비커스Ben Vickers와 케이 왓슨Kay Watson, 베를린은 스테파니 로젠탈Stephanie Rosenthal과 노에미 솔로몬Noémie Solomon, 뉴욕은 토마스 아놀드Thomas Arnold. 이렇게 여러 명의 큐레이터가 국가별 전시 프로젝트의 기획자로 참여했다. 또 안토니 곰리와 같은 거장부터 아직 우리에게 이름이 덜 알려진 젊은 작가, 그리고 커뮤니티 기반의 아마추어 작가까지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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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토록 협업이 중요했던 것인가?협업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시 예술의 문제로 돌아와야 할 것 같은데(웃음). 오래전, 시트콤 <프렌즈>를 보면서 ‘누가 저렇게 기발한 이야기와 대사를 쓰는 것일까?’라고 궁금해한 적이 있다. 마지막에 크레딧이 나오는데 정말 수많은 작가가 나오더라. 대중예술은 대부분 협업의 결과물이다. 영화도 마찬가지 아닌가? 나는 이것이 진보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현대미술은 오랫동안 한 명의 아티스트만 빛났다. 앞서 말했듯 예술은 ‘다수가 나누는 소중한 경험’이고 현대미술계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그 경험을 위해서 많은 이들이 함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DDP 디자인전시관 한편에는 다섯 도시의 전시를 기념하는 아카이브 전도 열렸다. 각 작가의 작품이 어떤 협업과 리서치, 제작 과정 등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이 전시 바닥에는 위도와 경도가 표시되어 있는데 글로벌한 커넥트를 의미하는 것이다. 메인 작품은 아니지만, 여기에도 협업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김용주 전시 디자이너가 아카이브 전시의 연출을 맡았다. 또 앤 베로니카 얀센스Ann Veronica Janssens의 설치 작품 <그린, 옐로 그리고 핑크Green, Yellow and Pink>에는 박상욱 건축가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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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베로니카 얀센스는 ‘그린, 옐로 그리고 핑크’와 ‘로즈Rose’라는 작품을 선보였다.안개와 빛으로 조각을 하는 작가다. 공공 미술 영역에서 여성 작가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그래서 그녀의 참여가 더 의미 있었다. 특히 경계를 지우는 안개 가득한 공간은 BTS의 페르소나 및 경계를 초월하는 창작 정신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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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연 작가의 아카이브 전시도 인상적이다.이번 프로젝트의 유일한 한국 작가다. 사실 이번 전시는 BTS가 추구하는 가치와 지향점을 드러내는 전시이고, 그들의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는 현대 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BTS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만 간다면 일반 관객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고 생각해 BTS의 히스토리를 보여주는 작품이 하나쯤 있어야 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의 작품 <비욘드 더 씬Beyond the Scene>은 BTS의 안무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작품이다. BTS의 퍼포먼스에 담긴 예술적 요소를 진지하게 다뤄주길 바랐다. 작가는 여러 국가의 아미들을 인터뷰하고 BTS와 그들의 안무를 연구해 프로젝션 매핑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BTS의 춤을 통해 그들의 역사를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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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 관람 팁을 주자면?문화와 예술은 올바른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하며 동시에 그 미래로 걸어갈 힘을 준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우리는 모든 감각을 일깨우고 편견 없이 예술을 바라봐야 한다. 시각뿐 아니라 청각과 후각, 촉각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한다. 앤 베로니카 얀센스의 작품을 통해 감각을 일깨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반대로 강이연 작가의 작품을 통해 감각을 분리해보는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때로는 형과 색이 나누어졌을 때, 이미지와 소리가 분리되었을 때 본질과 가까워지기 때문이다.